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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3부

by 현명한 거북이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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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_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

유럽 대표 명화를 수집한 스페인계 합스부르크와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

17세기에는 역동적이고 극적인 표현이 특징인 바로크 미술 양식이 발달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지역 등에서 크게 유행했다. 특히 상업의 중심지로 거듭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 집 안을 장식하는 다양한 장르의 회화가 발달했다.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브뤼셀에 부임했던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17세기에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수준 높은 회화를 수집했고, 말년에 수집품과 함께 빈으로 귀환했다. 카를 5세를 시작으로 약 200년간 이어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한 예술품도 카를 6세에 의해 18세기 초 빈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유럽을 빛낸 거장의 명화들은 수도 빈으로 모였고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

카를 5세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는 모든 영토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들은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했다. 결국 카를 5세는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영토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오스트리아 영토를 물려주었다. 그렇게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을 다스리는 계열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는 계열로 나뉘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1700년까지 5대에 걸쳐 약 200년간 이어졌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누린 펠리페 2세에 이어 펠리페 4세의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쇠퇴했으나 문학적으로는 번성하여 예술의 부흥기를 열었다.

 

카를 5세가 있는 메달. 1535-40년경
카를 5세가 있는 메달. 1535-40년경

 

카를 5세가 있는 메달. 1535-40년경 금, 흑요석, 나무

카를 5세가 1535년 튀니지를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메달이다. 월계관을 쓴 황제는 고전주의풍의 가슴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망토를 걸치고 있다. 황제 주위로는 카를 5세를 아프리카 황제로서 축하한다는 의미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메달 제작자는 메달 거푸집 1세트로 같은 모양의 메달을 많이 만들어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수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카를 5세의 공식 칭호

1521년 카를 5세는 다음과 같은 공식 칭호로 불렸다.

카를,

신의 은총으로 선출된 신성로마제국 황제,

제국의 영원한 영토 확장자,

독일,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양시칠리아, 예루살렘, 헝가리, 달마티아, 크로아티아, 나바라, 그라나다, 톨레도, 발렌시아, 갈리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세비야, 사르데냐, 코르도바, 코르시카, 무르시아, 하엔, 알가르브,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카나리아 제도, 동인도 제도와 서인도 제도, 대서양의 본토 등의 왕

오스트리아 대공, 부르고뉴, 로트링겐, 브라반트, 슈타이어마르크, 케르덴, 크라인, 림뷔르흐, 룩셈부르크, 헬데를란트, 뷔르뎀베르크, 칼라브리아, 아테네, 네오파트리아스 등의 공작

마틴 레디, -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中-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1631-32년 캔버스에 유화

이 초상은 펠리페 4세의 첫 번째 왕비인 엘리자베트의 초상화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펠리페 4세는 왼손에 장갑을 끼고 다른 쪽 장갑을 손에 쥔 채 검 손잡이 위에 왼손을 걸치고 있다. 장갑을 벗은 오른손은 종이를 쥐고 있다. 15-17세기 남성이 즐겨 있던 더블릿을 입고 있으며 소매에만 검은색과 흰색 문양의 장식이 있다. 목에는 검은색 리본의 황금 양모 기사단 휘장을 걸었다.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1631-32년 캔버스에 유화

펠리페 4세의 첫 번째 왕비인 엘리자베트는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마리 데 메디치 사이에서 태어났다. 펠리페 4세의 초상화와 짝을 이루려고 왕을 향해 살짝 몸을 돌린 모습으로 그렸다. 왕비는 초상화 그리는 것을 즐기지 않아 딱 한번 포즈를 잡아 초상화를 그렸다. 이후에 그려가는 수많은 초상화는 그 모습을 따른 것이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1656년경 캔버스에 유화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와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페인의 공주를 보고 싶어 하던 페르디난트 3세를 위해 그린 초상화이다. 공주는 훗날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게 된다. 두께와 농도를 달리 한 붓질로 소매와 드레스의 질감을 생동감 있고 정교하게 만드는 벨라스케스 특유의 화법이 잘 살아 있다.

 

 

레오폴트 빌헬름의 화랑
레오폴트 빌헬름의 화랑

 

레오폴트 빌헬름의 화랑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빈 미술사 박물관 회화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가이다. 그는 1647년부터 1656년까지 9년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있으면서 브뤼셀에서 활발한 수집 활동을 했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났던 대공은 궁정 화가, 동료 수집가와 함께 평생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했다. 빌헬름 대공은 특히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머물던 플랑드르 지역에서 장르별로 17세기 최고의 명화를 모았다. 단지 수집품 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품의 명성을 높였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얀 판 덴 후커 1611-1651)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얀 판 덴 후커 1611-1651)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얀 판 덴 후커 1611-1651) 1642년경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 빌헬름은 성공한 지휘관의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지휘봉을 쥐고, 왼손을 허리에 올려 자신만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아들인 빌헬름은 30년 전쟁 시기 독일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1646년에는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1,400점이 넘는 작품 등을 수집한 인물이다. 검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은 야전 사령관으로 일생을 보낸 대공의 인생을 암시하는 것 같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뷔뤼셀 화랑 (다비드 테니르스 2세) 1651년 빈 미술사 박물관

모자를 쓴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과 그의 궁정 화가 다비드 테니르스 2세를 중심으로 당시 구입한 51점의 이탈리아 회화를 둘러보는 장면을 그렸다. 제일 위의 왼쪽에서 두 번째 그림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 베로네세의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동방박사의 경배 (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동방박사의 경배 (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동방박사의 경배 (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1580-88년 캔버스에 유화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는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는 나이 든 왕을 축복한다. 왕의 오른편으로는 터번을 쓰고 코트를 입은 무어인 왕이 금 그릇을 손에 들고 아기 예수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다. 성모 뒤에 있는 요셉은 이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 세 명의 동방박사'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인기가 많았던 주제로, 동양과 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는 이국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베로네세: 파올로 칼리아리 1528-1588) 1580-88년 캔버스에 유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그렸다. 이브는 아벨로 추정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아담은 샘에서 물을 뜨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초록색과 갈색으로 물든 전원 풍경은 이들에게 다가올 재앙을 암시한다. 베로네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화가로 베네치아의 산 자코모 델라 주데카 성당에서 이 작품을 주문해 제작했다.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

루벤스는 강렬한 명암 대조와 역동적인 구도로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한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가이다. 그는 1609년에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임명된 알브레히트 7세 대공의 궁정 화가로 일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를 그렸다. 어떤 주제라도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생생한 작품으로 만드는 루벤스 특유의 화풍은 유럽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공방을 운영하며 효율적인 분업 체계를 만들었고 이로써 전 유럽에서 쇄도하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있었다. 각국의 외교 사절 역할도 겸했던 루벤스는 유럽을 통틀어 독보적인 화가로  명성을 얻었고 후대의 많은 화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은둔자와 잠자는 안젤리카(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은둔자와 잠자는 안젤리카 (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은둔자와 잠자는 안젤리카 (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1625-28년경 패널에 유화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광란의 오를란도>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공주가 은둔자의 구애를 계속해서 거절하자 은둔자는 그녀에게 약을 먹여 접근한다. 루벤스는 은둔자가 잠든 공주에게 다가가는 순간을 포착해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공주 뒤로 보이는 악령의 표정은 은둔자의 감정을 대변한다.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내는 화가의 재치가 엿보인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1620-25년경 캔버스에 유화

나그네로 변장한 신들은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방문한다. 집집마다 문전 박대를 당하지만 유일하게 이 늙은 부부만이 그들을 성심성의껏 대접했다. 화가는 노인이 손님에게 대접한 포도주가 줄어들지 않아 이들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을 그렸다. 붉은 옷을 입은 머큐리를 마주 보는 필레몬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고, 주피터는 손을 들어 단 한 마리 남은 거위마저 잡으려는 바우키스를 저지하고 있다.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서 공방을 열고 장르별 대표 화가들과 협업했는데, 이 작품의 정물과 동물은 플랑드르 화가 프란스 스네이데르스가 그렸다. 

 

기름 부음을 받는 솔로몬(코르넬리스 데 포스 1584-1651)
기름 부음을 받는 솔로몬 (코르넬리스 데 포스 1584-1651)

 

기름 부음을 받는 솔로몬 (코르넬리스 데 포스 1584-1651) 1630년경 캔버스에 유화

밧베사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그렸다. 기름 부음은 왕위 계승 의식을 의미한다. 솔로몬은 화려한 대야 위로 몸을 숙이고 그 뒤로 어린 시종 두 명이 왕실의 상징인 홀과 왕관을 놓은 베개를 들고 서 있다. 뒤로 보이는 나선형 기둥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솔로몬 기둥을 연상시키며 기름 부음의 주인공이 솔로몬임을 나타낸다.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얀 스테인 1626-1679)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얀 스테인 1626-1679)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얀 스테인 1626-1679) 1670년경 캔버스에 유화

한 여관에서 열린 왁자지껄한 결혼식 피로연 장면이다. 나이 많은 신랑은 지푸라기 몇 가닥만 꽂은 모자를 쓰고 있다. 볼록한 신부의 배에 손을 올린 아이가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어 신랑이 바람난 신부에게 속았음을 알 수 있다. 플랑드르에서는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풍속화가 그려졌는데 얀 스테인은 대표적인 풍속화가였다. 이 그림은 부부의 정절을 지키고 간통을 삼가라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꽃다발(얀 판 덴 헤커 1620-1684)
꽃다발 (얀 판 덴 헤커 1620-1684)

 

꽃다발 (얀 판 덴 헤커 1620-1684) 1650년경 캔버스에 유화

노란 오스트리아 들장미를 중심으로 청백색 나팔꽃은 화면 왼쪽에서 색감을 뽐낸다. 하얀 백합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옆으로 주홍빛 깍지콩 꽃은 꽃다발의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불꽃무늬 튤립이 꽃다발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춘다. 화가는 얀 브뤼헐 1세(1564-1625)가 유행시킨 꽃다발 정물을 변형하여 풍성함은 적지만 세련되어 보이도록 구성했다.

 

화환 속 남자(얀 리벤스 1607-1674&#44; 얀 판 덴 헤커 1620-1684)
화환 속 남자 (얀 리벤스 1607-1674, 얀 판 덴 헤커 1620-1684)

 

화환 속 남자 (얀 리벤스 1607-1674, 얀 판 덴 헤커 1620-1684) 1642-44년 패널에 유화

미소를 띤 젊은 남성이 화환에 둘러싸여 있다. 화환은 튤립, 수선화, 카네이션, 장미, 한련, 물망초, 히아신스, 아네모네, 은방울꽃, 나팔꽃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꽃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이 같은 화환 속 초상화는 안트베르펜 지역 회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다. 루벤스와 반 다이크의 영향을 받은 얀 리벤스는 초상화로 가장 잘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이다.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얀 브뤼헐 1세 1564-1625)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 (얀 브뤼헐 1세 1564-1625)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 (얀 브뤼헐 1세 1564-1625) 1608년경 패널에 유화

검은 붓꽃은 정물화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꽃이지만, 얀 브뤼헐 1세는 꽃 정물화에 종종 이 검은 붓꽃을 그렸다. 바닥에 떨어진 무당벌레, 메뚜기, 파리, 헤이즐넛, 떨어진 꽃잎은 '눈속임(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려 실제로 눈앞에 있는 듯 느낌을 준다. 떨어진 꽃잎은 화려한 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든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꽃병은 중국 명대 청화백자로 동물 머리 모양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브뤼헐 가문과 꽃 정물화

플랑드르 출신인 피터르 브뤼헐 1세는 소작농과 전원의 삶을 그린 풍경화로 브뤼헐 화가 가문을 이끌었다. 그의 둘째 아들 얀 브뤼헐 1세는 아버지의 명성을 잘 이어간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히 정물화를 잘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꽃다발 정물이 가장 유명해 '꽃의 브뤼헐'이라고도 불렸다. 17세기 플랑드르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발달한 꽃 정물화는 하나의 꽃병에 각기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모아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꽃다발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꽃병 아래 떨어진 시든 꽃잎과 곤충 등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얀 브뤼헐 2세 1601-1678)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얀 브뤼헐 2세 1601-1678) 1626년 이후 패널에 유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둘러싼 수풀과 꽃은 꽃 정물에 뛰어났던 얀 브뤼헬 2세의 화법을 보여준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때 궁정 화가였던 테니르스 2세의 소개로 오스트리아 황실의 작품 의뢰를 받으며 부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집트로 피난 중 휴식 (얀 브뤼헐 1세 1568-1625)
이집트로 피난 중 휴식 (얀 브뤼헐 1세 1568-1625)

 

이집트로 피난 중 휴식 (얀 브뤼헐 1세 1568-1625) 1595년경 동판에 유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가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는 도중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다. 천사는 그들의 여정이 신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숲 풍경화는 주로 성경이나 신화 이야기의 배경으로 그려졌다. 숲을 배경으로 아기 예수 가족이 쉬어가는 장면은 당시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이다. 이 작품에서 얀 브뤼헐 1세는 풍경을, 한스 로텐함버(1564-1625)는 인물을 그렸다.

 

 

<승리> 연작 (안드레아 만테냐 1431-1506의 제자로 추정) 1598년 이전 종이에 과슈, 캔버스에 래미네이트

현재 햄프턴 궁전에 소장돼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린 <승리> 연작을 작은 크기로 모사한 것이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 갈리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 장면을 묘사했다. 만테냐의 그림을 판화로 옮긴 작품들은 만테냐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 트럼펫 연주자와 기수&#44; 2. 신의 조각상과 무기
1. 트럼펫 연주자와 기수, 2. 신의 조각상과 무기

 

1. 트럼펫 연주자와 기수

트럼펫과 튜바를 불며 행렬을 이끄는 연주자를 뒤로 깃발과 전투 장면 그림을 든 병사들이 따르고 있다. 군기에 매달린 작은 시판에는 카이사르의 군사적, 정치적 경력이 적혀있다.

2. 신의 조각상과 무기

신들의 조각상과 도시 모형, 수레 위에 쌓인 무기들을 그렸다. 조각상은 모두 정복한 지역에서 약탈한 것이며, 도시 모형은 정복한 지역을 본뜬 것이다. 가운데 커다란 서판에는 "최고 사령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전투를 극복하고 갈리아 군대를 상대로 승리한 것에 대해 개선식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3. 전리품을 나르는 사람&#44; 4. 꽃병과 제물로 바칠 소를 나르는 사람
3. 전리품을 나르는 사람, 4. 꽃병과 제물로 바칠 소를 나르는 사람

 

3. 전리품을 나르는 사람

수례 위에 전승 기념비 형태로 걸린 무기와 방어구를 보여준다. 무기를 실은 수레 뒤로 동전과 세공된 그릇을 지고 가는 가마꾼이 보인다.

4. 꽃병과 제물로 바칠 소를 나르는 사람

가마꾼 행렬이 이어진다. 가마꾼이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쟁반과 꽃병들을 나르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잔도 보인다.

 

5. 제물로 바칠 소와 코끼리&#44; 6. 가슴 갑옷을 운반하는 사람
5. 제물로 바칠 소와 코끼리, 6. 가슴 갑옷을 운반하는 사람

 

5. 제물로 바칠 소와 코끼리

네 마리의 코끼리와 함께 제물용 소가 등장한다. 자수로 호화롭게 장식한 테피스트리를 걸친 코끼리가 보인다. 과일과 나뭇잎이 가득한 바구니를 머리에 얹고, 등에는 촛대를 지고 있다.

6. 가슴 갑옷을 운반하는 사람

각종 금은보화를 지고 가는 가마꾼과 그 뒤로 화려하게 장식된 갑옷과 무기를 나르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7. 포로&#44; 8. 악사
7. 포로, 8. 악사

 

7. 포로

손이 묶은 채로 감옥 앞을 지나는 포로와 그 뒤를 따르는 군인을 표현했다. 두 행렬은 횃불 형태의 깃발을 중심으로 나뉘며, 군인 뒤에는 월계수가 보인다.

8. 악사

악사와 기수들을 보여준다. 악사들이 트럼펫, 하프, 백파이프, 탬버린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깃발에 그려진 로마의 건국 신화 그림은 전투에서 완전히 패한 적에 대한 로마의 지배력을 선언하는 것이다.

 

9. 전차에 탄 카이사르
9. 전차에 탄 카이사르

9. 전차에 탄 카이사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에게 받은 월계관을 쓴 카이사르가 말이 끄는 전차에 앉아 개선문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다. 카이사르는 망토를 걸친 채 양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독수리가 세공된 황금 홀을 들고 있다.

 

 

부유층의 전유물, 사냥

사냥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고급 취미로 귀족들과 더불어 신흥 부르주아 계층도 즐길 수 있었다. 자신의 부유함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냥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대부분 집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슴 사냥은 귀족 이상의 신분에게만 허가된 특권이었지만 새 사냥은 부르주아 계층도 즐길 수 있었다. 새 사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부르주아 계층이 주문한 것이다.

표범과 독수리(필리프 페르디난트 데 해밀턴 1667년경-1750)
표범과 독수리 (필리프 페르디난트 데 해밀턴 1667년경-1750)

 

표범과 독수리 (필리프 페르디난트 데 해밀턴 1667년경-1750) 1722년 캔버스에 유화

대머리 독수리가 표범이 갓 잡은 흰 닭을 낚아채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표범은 고개를 뒤로 돌려 대머리 독수리를 노려본다.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 극적인 대립 구도는 관람자가 다음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화가는 카를 6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궁정 화가로 일했다고 황실 기록에 남아 있다. 화가는 작품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궁정 화가'라는 뜻의 'S. C. M. C. P.'라는 머릿글자를 남겼다.

 

건강을 회복한 세바스티안은 스스로 황제 앞에 나아가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세바스티안은 황제의 두 번째 명령으로 순교했다.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은 세바스티안은 수호성인의 상징이 되었다.

 

성 세바스티안 (알브레히트 폰 호른 1581년경-1665)
성 세바스티안 (알브레히트 폰 호른 1581년경-1665)

 

성 세바스티안 (알브레히트 폰 호른 1581년경-1665) 1634-35년경 은, 도금, 나무

고대 로마 황제의 근위 대장인 성 세바스티안은 기독교 신자들을 몰래 도왔다. 이를 알게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사형 선고를 내리지만 그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선고에서 세바스티안은 순교한다. 작품은 세바스티안이 첫 번째 사형 선고로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는 장면을 묘사했다. 비록 몸에는 화살이 꽂혔지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 전염병을 막는 수호성인의 상징이 되었다.

2022.12.27 - [라이프]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4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4부

4부_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 합스부르크의 수집품을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18세기 카를 6세 황제의 시대, 내정을 불안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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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0 - [라이프]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5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5부

5부_걸작을 집대성하다, 빈 미술사 박물관 도시 확장 정책으로 빈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만든 프란츠 요제프 2세 황제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 미술사 박물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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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 [라이프]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_0. 프롤로그, 테마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_0. 프롤로그, 테마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들이 600년에 걸쳐 수집한 특별한 수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에 다녀왔다. 오스트리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유럽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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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1 - [라이프]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부

1부_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 취향에 따라 수집하여 프라하에서 '예술의 방'을 꾸민 루돌프 2세 10세기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 속에서 합스부르크는 구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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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3 - [라이프]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2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2부

2부_ 최초로 박물관을 꾸미다, 티롤의 암브라스 성 티롤 지역에 최초의 박물관을 만든 페르디난트 2세 대공 남다른 수집벽으로 유명한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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