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
취향에 따라 수집하여 프라하에서 '예술의 방'을 꾸민 루돌프 2세
10세기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구교와 신교의 대립 속에서 합스부르크는 구교의 수호자로서 반종교개혁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2세는 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고 그를 신뢰하지 못한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는 결국 구교를 신봉하겠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는 스페인의 왕이자 오촌인 펠리페 2세에게 엄격한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우울한 기질이었던 루돌프 2세는 정치적으로 무능력했지만 예술품 수집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프라하로 수도를 옮긴 후 수많은 예술가를 불러들여 후원했고 이렇게 수집한 예술품을 그의 '예술의 방'에 전시했다.
마티아스 (뤼카스 판 발켄보르흐 1535-1597) 1583년경 캔버스에 유화
마티아스가 린츠에 머물던 시절에 그의 궁정 화가였던 뤼카스 판 발켄보르흐가 그린 것이다. 그는 루돌프 2세의 동생이다. 정치적 야망이 컸던 마티아스는 헝가리 신교 진영 세력을 규합해 160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1611년에는 보헤미아의 왕이 되었고 결국 161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추대됐다. 황제가 된 이후에는 오히려 신교 진영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 30년 전쟁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누금 장식 바구니. 16세기 후반 금
작은 크기의 바구니는 꽃과 잎 무늬의 가는 금줄과 작은 금 알갱이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누금 세공으로 섬세하게 작업한 이와 같은 금세공 작품은 장식용으로 수집되어 17세기 유럽에서 수요가 많았다. 루돌프 2세 황제는 이 작품을 가장 특별한 예술품만을 모은 소장품 집에 포함시켰다. 17세기 당시 이러한 예술품은 대부분 고아를 중심으로 한 인도 서부에서 생산되어 리스본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졌고, 루돌프 2세의 소장품 집에도 인도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루돌프 2세 (마르티노 로타 1520년경-1583) 1576-80년경 캔버스에 유화
루돌프 2세의 궁정 화가였던 마르티노 로타가 황제 즉위를 기념해 제작한 초상화로 추정된다. 루돌프 2세는 합스부르크 군주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인물로 꼽힌다. 루돌프 2세 치세에 구교와 신교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또 13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 튀르크 전쟁에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해 무능한 황제라는 인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공예품은 빈 미술사 박물관 공예관의 모태가 될 정도로 그의 예술가적 감식안은 높게 평가된다. 정치나 종교보다는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누워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조반니 암브로조 미세로니 추정 1551년경-1616) 1600-10년 옥수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인 옥수 한 덩어리를 인체 표현한 움직임을 정교하게 살려 만든 작은 조각상이다. 두 인물에 맞게 재료의 자연적인 색채를 그대로 살린 조각가의 방식도 놀랄만하다. 조반니 암브로조는 1600년부터 밀라노에 미세로니 가문 공방을 이끌었던 인물로, 당시 재료의 질감을 잘 살려 실력이 뛰어난 석공으로 평가받았다.
마노 그릇 (오타비오 미세로니 1567-1624) 1615-24년 이끼 마노, 은, 도금
그릇 바깥 면을 두르는 소용돌이 띠무늬와 정교하고 얇게 깎은 가장자리는 오타비오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그릇의 금속 장식은 HC라는 머리글자를 쓴 제작자가 한 것으로 작품의 받침대에 서명이 남아 있다. 이 제작자의 특징은 그릇과 받침대를 연결하는 도금 은제 장식에 투각 장식이 긴 암술대 모양의 장식을 더하는 것이다. 밀라노 출신 석공 오타비오 미세로니는 루돌프 황제의 요청을 받아 프라하에 공방을 차려 작업했고, 프라하가 유럽 석조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데 일조했다.
연수정 꽃병 (디오니시오 미세로니 1607 추정- 1661) 1652년 연수정, 은, 도금
하나의 큰 연수정 덩어리로 병의 몸통을 만들고 여기에 나뭇잎 무늬 입구와 손잡이, 받침대 금속 장식을 붙여 완성했다. 몸통에는 소용돌이와 괴수 얼굴을 닮은 무늬가 교차하고 옆면의 손잡이 가장자리 부분에는 과일 바구니 무늬가 있다. 빛의 굴절과 반사, 투명도를 이용해 연수정의 특성을 살려 제작됐다. 루돌프 2세의 황실 석공 디오니시오 미세로니의 후기 작업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그는 오타비오 미세로니의 아들로서 가업을 이어 프라하 궁정에서 일했다.
조가비 모양 그릇. 17세기 전반 산호 석회암, 은, 도금
산호 석회암은 16세기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와 귀족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수집품 중 하나였다. 이 그릇을 제작한 석공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용하던 산호 석회암을 선택해서 마치 자연스럽게 주름이 진 것처럼 보이도록 제작했다. 석회암의 생김새에서 '별 무늬 돌'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루돌프 2세도 이 '별 무늬 돌'을 7점 소장했다고 한다.
루돌프 2세는 '예술의 방'에서 외국 사절들을 맞이하는 등, '예술의 방'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원했다. 이 방은 당시 '세계의 극장'으로 불릴 정도로 회화, 공예품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입수한 화석과 암석, 각종 자연물을 소재로 그린 삽화와 같은 진기한 수집품도 전시되었다. 루돌프 2세의 '예술의 방'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모인 소우주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십자가 모양 해시계. 1619년 구리 합금에 도금
해 시계는 근대 초기까지 시간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었다. 기계식 시계처럼 오작동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해시계는 여러 방법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다면 십자가 구조로 제작되었다. 해 시계에 집약된 다양한 방법의 시간 측정법은 제작자의 수학, 기하학, 과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루돌프 2세 황제가 선호한 예술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조반니 카스트 루치 추정 1598-1615년 추정) 17세기 전반 마노, 벽옥
멀리 산맥이 있고 가운데에는 우뚝 솟은 탑이 있는 성과 다리가 보인다. 보석류 석판을 형태에 맞게 깎아서 조립한 것으로 '보석 모자이크'라고 부른다. 조반니 카스트 루치는 1610년 루돌프 2세 황제의 황실 석공이었다. 아버지 코지모 카스트 루치는 피렌체 출신 장인으로 프라하로 이주해 '보석 모자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공방을 설립했다.
루돌프 2세는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프라하의 왕성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끝없는 지식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생동안 수많은 분야의 학문을 탐독했다. 그의 말년은 고독했지만, 우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과연 보상을 받았을까? 그 답은 진기한 수집품으로 가득한 빈 미술사 박물관 공예관의 '루돌프 2세의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 16세기 전반 은에 금도금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형식의 접시로, 세 개의 동심 원안을 부조로 꾸몄다. 가장 바깥쪽에는 아시리아에게 포위당한 유대 도시 베툴리아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구약성서에서 신앙이 깊으며 남편을 잃은 여인 유디트는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뒤 목을 잘라 도시를 구한다. 가장 안쪽 원에는 재판받는 벌거벗은 남자, 광야, 세례와 천사, 옷을 받는 수도승이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들
스페인 왕실에서 유년기를 보낸 루돌프 2세는 정치, 종교보다 예술,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황제가 된 후에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ㅁ낳은 화가를 프라하 왕실로 불러들였다. 엄격한 가톨릭 교리 아래에서 성장한 루돌프 2세에게 인체의 비율을 비틀어 표현하는 매너리즘의 화법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랑을 나누는 장면 같은 에로틱한 주제의 그림을 선호했다. 루돌프 2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오제프 하인츠 1세, 한스 폰 아헨 등을 궁정 화가로 삼았다. 꽃 정물화와 풍경화로 유명했던 롤란트 사베리 역시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였다. 그는 황제의 명으로 티롤 지역을 방문해 다양한 풍경을 관찰했고 그를 토대로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다.
주피터와 칼리스토(요제프 하인츠 1세 1564-1609) 1603년 이후 동판에 유화
주피터는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로 변장하여 다이애나를 따르며 순결서약을 한 님프 칼리스토를 속이고 있다. 주피터의 등 뒤로 보이는 분홍색 천은 그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흔적이다. 주피터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칼리스토는 주피터의 포옹을 거부하고 있다. 요제프 하인츠 1세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루돌프 2세(1552-1612)의 궁정 화가였다. 길어진 신체 비례는 일반적인 매너리즘 화풍의 특징이다.
머큐리의 경고를 받는 비너스와 마스(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 1546-1611) 1586-87년경 캔버스에 유화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주로 남편인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가 아닌 다른 남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이 그림에서는 전쟁의 신 마스와 등장한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쓴 머큐리는 훈계하듯 손가락을 들어 올려 간통하지 말라는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르톨로메우스 스프랑거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루돌프 2세(1552-1612)의 궁정 화가이다. 매너리즘의 특징인 길어진 신체 비례와 모호한 자세 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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