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_걸작을 집대성하다, 빈 미술사 박물관
도시 확장 정책으로 빈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만든 프란츠 요제프 2세 황제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 미술사 박물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켰다. 그는 민족주의가 급부상하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대를 열어 대외적 안정을 도모했다. 한편 1857년에는 수도 빈의 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명령하여 장장 30년간 도시 빈을 현대화했다. 도시 성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너비 57미터, 길이 5킬로미터에 이르는 반지 모양의 도로인 링슈트라세를 만들었다. 도로를 따라 도시 빈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지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건물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빈 미술사 박물관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후계자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68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릴 만큼 건강했고 황태자 루돌프가 있어 든든했다. 그러나 할머니 조피 대공비의 지나친 후계자 교육으로 루돌프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1889년 자살해버렸다. 황태자를 잃은 황제는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차기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그는 강경한 개혁 정책을 내세워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고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결국 황제는 또다시 후계자를 잃고 다른 조카의 아들인 카를 1세를 황태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2년밖에 재위하지 못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함께 왕정은 끝이 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제복 (안톤 우첼 & 존) 190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군대는 독일 군복과 헝가리 군복을 모두 입을 수 있었다. 이 제복은 헝가리식 제복으로 밝은 회청색 재킷은 기병대의 금몰 장식으로 여미게 되어 있다. 금색 자수로 아칸서스 잎 무늬 계급장을 장식한 옷소매는 빨간색 깃 장식과 함께 화려함을 더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중 제국 시기 육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육군 원수의 계급이었고 상황에 따라 독일 군복과 헝가리 제복을 번갈아 입었다.
수석총 (클로드 비주아르 1840-1866) 1857년 연철, 주철, 아말감 도금, 금 상감, 은박지, 호두나무, 실크, 은실, 금실
손잡이를 술 장식이 달린 빨간색과 금색의 실크 끈으로 감았다. 총신은 음각, 도금, 물결 문양 금상감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총은 튀니지 왕 시디 모하메드 2세(1855-1859)가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당시 튀니지에 종주권을 행사하는 튀르키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던 튀니지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오스트리아의 좋은 관계를 맺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자베트는 바이에른에서 자유롭게 성장했다. 원래 그녀의 언니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약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황제는 엘리자베트에게 첫눈에 반했다. 1854년 4월 24일 빈의 아우구스티너 교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고 그녀는 예정에 없던 황후가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실 예법은 숨 쉴 틈 없이 엄격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엘리자베트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와의 갈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녀의 양육권까지 대공비에게 넘겨야 했던 엘리자베트는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점점 고립됐다. 끝내 오스트리아 황실에 적응하지 못한 엘리자베트에게 비극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엘리자베트(시시) 황후 (요제프 호라체크 1830-1885) 1858년 캔버스에 유화
'시시'로도 불리는 엘리자베트는 오스트리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황후이다. 초상화는 그녀가 21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어두운 배경에 밝은 푸른빛 드레스가 미모를 돋보이게 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엘리자베트에게 엄격한 황실은 감옥과 같았다. 결국 오스트리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비운의 황후 엘리자베트는 1898년 제네바 여행 도중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프란츠 요제프 1세 (미하이 문카치 1844-1900) 1896년경 캔버스에 유화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오스트리아 육군 원수의 정복 위에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기사단 현장과 휘장을 갖추고 있다. 그는 1848년 오스트리아 황제가 된 후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을 결성하여 헝가리 왕으로도 즉위했다. 황제의 가장 큰 업적은 빈을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하고 빈 미술사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19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화가 미하이 문카치는 초상화, 풍경화, 종교화 등으로 유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1898년 9월 엘리자베트는 스위스 제네바를 여행하고 있었다. 황후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은 스위스의 신문으로 알려졌고 이 기사를 읽은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1873-1910)는 그녀를 암살했다. 그는 가는 송곳으로 엘리자베트(시시)의 가슴을 찌르고 도망쳤는데 그녀는 옷 안에 받쳐 입은 코르셋 때문에 한참 동안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스위스를 떠나는 배에 타고 코르셋을 풀자마자 심한 출혈이 시작됐다. 황후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한 마디만을 남기고 결국 사망했다.
스테파니 황태자비 (한스 마카르트 1840-1884) 1881년 캔버스에 유화
스테파니는 프란츠 오제프 1세(1830-1916)의 아들 루돌프 황태자(1858-1889)와 17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꽃으로 장식한 우아한 새틴 드레스를 입은 황태자비의 초상화는 약혼을 기념하여 그린 선물이었다. 루돌프 황태자가 내연녀 메리 베체라(1871-1889)와 동반 자살한 뒤 스테파니는 재혼해서 헝가리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러시아군에 의해 궁에서 쫓겨나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에필로그_ 더 가까이, 오스트리아에 전한 조선의 마음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체결과 빈에 남은 조선의 갑옷과 투구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년 역사 속에 조선이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인 1892년, 오스트리아와 조선은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오스트리아는 오랜 경쟁관계에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고 자국 상인들이 조선의 개항장에서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오스트리아와 조선은 수교를 맺었다. 수교 선물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는 1894년 합스부르크의 수집품으로 등록됐고, 13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조선의 갑옷과 투구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와 조선이 주고받았던 마음의 증표이다.
투구와 갑옷. 조선 1890-94년경
1892년 조선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과 수교하면서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수교를 기념하여 고종은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에게 선물로 조선의 투구와 갑옷을 보냈다. 네 조각으로 구성된 투구의 앞면에는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이, 뒷면에는 봉황 무늬가 있으며 양 옆과 뒤에는 얼굴을 보호하는 가리개를 달았다. 갑옷은 상체뿐 아니라 허벅지까지 감쌀 수 있게 하였다. 고종이 직접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투구와 갑옷이다.
1892년 12월 8일 극동 항해를 준비 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 보호 순양함 '카이세린 엘리자베트'의 사진이다. 이 순양함은 1893년 10월 우호통상 항해조약 비준서 교환을 위해 조선을 방문했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는 이 순양함에 실려 오스트리아로 갔고 1894년 2월 10일 황제의 수집품에 등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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